북한미술
소장 작품들의 예술가 소개
강신범
인민예술가
1944년 11월 서울 출생 (월북화가 강호 맏아들)
1959~1966년 평양미대학 전문부 졸업
졸업 후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조선화창작단에서 활동 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함
1992년 공훈예술가 칭호 수여받음
월북화가인 미술가 강호 화백의 맏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주제화작품창작에서 좋은 성과를 나타내며 독자적인 창작능력을 가진 미술가로 점차 화단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일부 작품은 높은 평을 받으며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하였고 다수의 작품들이 조선 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다.
북한에서 그에 대한 평은 천성이 고지식하여 창작에서 기교적인 측면을 내세우려 하지 않으며 우연한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생 강수진은 평양미술대학을 졸업 후 도안가로 창작사업을 하고 있으며 다른 동생인 강신일은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미술가로 가족 모두 미술계에 몸담고 있다.
김기만
인민예술가
1929년 2월 서울 종로 출생
김기창 화백의 동생으로 형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함
한국전쟁 시절 인민의용군으로 입대하여 1955년까지 군 복무 후 1956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과 입학하여 전문미술교육 수료
1960년~1965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원, 1982년까지 조선민속박물관 미술부장으로, 그 후 철도미술창작사 실장 등으로 주로 미술 창작기관에서 활동
4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맏형 김기창 화백의 슬하에서 살며 유년기 형의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며 미술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9년 경기공립고등학교 재학시절 리해성, 리순종, 길진섭(한국전쟁 전 서울대 미술학부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그림을 그려 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로선주
인민예술가
1937년 2월 ~ 1997년 7월
1960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67년까지 북한 순천사범대학 미술 교원
남포에서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미술가동맹
남포시위원장
로선주는 전통적인 조선화의 기법들을 착실하게 배우고 그에 의거하여 인물주제화, 풍경화 등 여러 주제의 다양한 화폭들을 민족적 정서와 감정이 느껴지도록 형상한 현대 조선화의 중견 미술가이다.
그의 화풍은 남포시에서 영향력이 컸으며 그를 따라 적지 않은 조선화 화가들이 유사한 작품 형상을 창조하고 있다.
그의 화명처리에서 불필요한 과장과 겉치레를 철저히 경계하고 대상 미의 속성들을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통하여 진실하게 밝혀내는데 힘을 기울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매우 친근감을 자아내고 고상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고 평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바위산들의 형태와 주름을 자기식의 묘사 방법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어설픈 듯 같으면서 잘 조화되고 있다.
나무들과 특히 정자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표사적 특기를 소요하고 있으며 그의 재능은 80년대 이후 풍경화 작품들에서 완숙한 경지에 들어섰고 국외에서 진행되는 여러 미술 전람회들에 빠짐없이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그 중 중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알려진 재능 있는 미술가이다.
한명렬
인민예술가, 송화미술원 대원로 화가
1926년 2월 전라북도 익산 출생
해방 후 1949년 홍익대학 미술과 입학
한국전쟁 후 월북하여 신의주 법랑철기공장에서 미술가 활동
1976년부터 평안북도 미술창작사에서 미술창작활동
조용하고 부드러운 필법으로 몰골화법에서 높은 위치에 있어 화조몰골의 작품을 주로 그림
송화미술원의 회원으로 송화미술원점람회에 작품을 출품함
1988년 공훈 예술가의 칭호를 수여받음
부모님을 일찌기 여의고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내며 형과 함께 중국으로 넘어가 소학교를 마치고 하얼빈 제분공장에서 마대수리공으로 일하다 해방후 고향으로 귀국하여 간판점, 가구공장 등에서 심부름 등 허드렛일 하던중 홍익대 미술과에 입학하게 되어 미술에 입문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전에서 월북하여 북한에서 미술가로 활동하며 많은 주제화를 창작하였다.
말년에 이르러 화조몰골을 주로 그리며 북한 내에서 몰골그림에 한 획을 긋는 화가로 알려져있다.
황병호
공훈예술가
1942년 2월 평양출생
1968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3년까지 중앙미술창작사 미술가
1992년 공훈예술가 칭호 수여받음
황병호의 풍경화들은 운치가 있어 풍경화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는 전통적인 금니화 형상방법으로 폭이 큰 작품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는데 성공한 바 금색의 은은한 조화는 그림의 품격을 돋구어 주고있다.
만수대창작사 활동시절 국가미술전람회와 부분 점람회들에 많은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그 중 10여 점의 작품들이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품으로 전시되었다.
리종원
공훈예술가
1934년 11월 황해북도 출생
1963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활동
1970년~1988년 만수대창작사 벽화창작단 단장
평양지하철 6개 역사 벽화 창작
1988년부터 평양미술대학 강좌장(교수, 학과장) 및 창작가 활동
초기 평양학생소년궁전 중앙홀의 벽화 '해돋이' 창작.
만수대창작사에서 벽화창작을 조직하고 지도하던 1970년대는 북한에서 벽화의 새로운 시원이 열리던 때로 이 때부터 이종원은 북한 벽화 창작의 대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민문화궁전, 김일성경기장, 4.25문화회관, 만수대예술극장 등 주요기념비적인 건축물의 벽화작품들에 대한 창작조직과 형상지도를 맡아 훌륭히 수행한 업적을 갖고 있다.
김상훈
인민예술가
1933년 3월 평안북도 출생
1961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졸업 후 대학의 연극 및 영화미술에 대한 강좌장(교수)으로 후학 양성과 다수의 예술영화 창조사업에 참여.
1980년대 이후에는 회화창작활동에 전념
1991년 국제문화회관에서 130여점의 작품으로 개인전 개최
1996년 40여점으로 중국 연변에서 전시회
1997년 인민예술가 칭호 수여
김상훈은 회화가이면서도 영화미술가이다.
오랫동안 대학의 연극 및 영화 미술강좌 교원으로 있으며 적지않은 예술영화의 창조사업에 참가하였으며 80년대 이후에는 회화작품창작에 힘을 넣었다.
그의 업적 중 유화 '1994년 7월의 만수대언덕'은 김정일로부터 직접 깊이가 있는 작품, 최고의 성과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김상훈은 교육자로서 '영화장치미술', '영화무대미술자료집', '회화습작품집', '영화미술'을 집필, 편집하여 후대교육사업을 위한 업적을 쌓았다.
구본영
인민예술가
1922년 10월 서울 출생
1941년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졸업
1943년 일본제국미술학교 중퇴 후 개성공립중학교, 서울공업중학교 교원 재직하여 남조선미술가동맹 서울지부등에서 창작활동
한국전쟁때 월북하여 평양수예연구소의 미술강사로 10년간 우수한 수예 전문 후학 양성
1963년 평안북도 미술위원장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어린 시절 형 구본식이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중학교 시절에 두 차례에 거쳐 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하였다.
이름난 화가인 오지호 화백의 집에 자주 찾아다니며 그림지도를 받고 미술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1982년 이후 구본영은 평안북도 미술창작사 창작가로 마지막시기까지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그는 도내 미술 창작사업과 미술 발전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제기되는 많은 창작사업을 훌륭하게 조직, 지도하였으며 도내 각종 예술교양사업도 활발히 조직, 진행하였다.
김창길
인민예술가
1942년 9월 함경남도 출생
1968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졸업 후 만수대창작사 유화단에서 30여년 간 창작 활동
1985년 공훈예술가 칭호
1995년 인민예술가 칭호
초기에는 벽화 창작을 주로 하였으며 80년대 이후로 유화 창작활동을 주로 하였다.
최중균
인민예술가
1949년 12월 개성 출생
1969년 평양 상신고등경공업학교 산업미술 졸업
졸업 후 철도부 미술창작사에서 미술가, 창작실장으로 활동
최중균은 같은 아파트에 살던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장인 김석룡(1947년 갓 설립된 평양미술대 교수)에게 매주 2~3차례에 걸쳐 체계적인 미술 기초 교육을 받았다.
최중균은 엄격하고도 구체적인 스승의 지도하에 처음으로 B연필이 아니라 E(연한)연필을 뾰족하게 다듬어 소묘하는 훈련을 하며 배웠다.
그는 철도부미술창작사에서 처음에는 10년간 주로 야외전시를 위한 모사작품들을 그리면서 유화, 조선화, 수채화 등 명확한 목표를 가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이렇다하게 인정받을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하였다.
체계적인 미술 교육이 부족했지만 1980년대부터 매해 열리는 국가미술전람회, 부분미술전람회에 빠짐없이 작품을 출품하여 창작가들과 창작비평가들로부터 많은 조언과 격려를 받으며 자신만의 개성을 찾고 발전시켜 나가게 되었다.
그 후 최중균은 화가로서 색채감각이 예민하고 대담하고 빠른 솜씨로 현실의 변화하는 모습을 능숙하게 그려내는 솜씨를 갖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표세종
인민예술가
1929년 7월 전남 목포 출생
1954년 일본 도쿄 무사시노미술대학 졸업
1962년까지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미술교사로 재직 후 월북하여 함경남도 미술제작소 및 조선미술가동맹 함경남도 미술가로 활동
1982년 이후 함경남도 미술창작사 창작실 미술가로 활동
1986년 창작공로로 공훈예술가의 칭호 수여
표세종은 유화창작에서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현실의 면모를 구체성을 가지고 사실주의적으로 진실하게 묘사하는데 힘을 넣고 있다.
그의 작품은 진실하고 솔직하며 서민적인 감정이 구현되어 통속성을 느끼게 하며 불필요한 기교를 부리거나 형식에 치우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장명룡
인민예술가
1934년 9월 중국 흑룡강성 출생
강원도 화전민 출신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 흑룡강성으로 건너가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냄
1946년 길림성으로 이사하여 중학교를 다니며 미술공부를 시작함
1952년 중국 동북로신미술대학 입학하여 유화과 졸업 후 모교에서 교원으로 생활
1959년 아버지의 유언으로 북으로 귀국
1963년까지 국립미술출판사 전속화가로 귀속되어 있었고 그 이후부터 평안북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활동
이 기간동안 조선혁명박물관, 중앙역사박불관, 신천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작품창작과 평양지하철도 벽화 창작사업에 참가
1978년 ~ 1980년까지 이라크에 조선미술가대표단으로 파견되어 대형전경화창작을 함
장명룡은 재치있는 형상으로 많은 풍경화 작품을 창조하였으며 1997년에는 평양에서 성황리에 개인미술품전람회를 열어 많은 전문가로부터 독특한 색채감으로 천재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현대 유화가들 가운데 창작실적이 높고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왕성하게 창작생활을 하는 창작적사고가 높은 중견미술가로 알려져 있다.